문병준의 글 에 대한 코멘트,
페이스북에다가 이 정도 글을 투척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지라 블로그로.
여성주의 관련 글이니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 여성주의자 언니들의 문체를 내 식으로 활용해봤는데,
평가를 해주세여. 이 문체도 살리면 좋을런지.
1.
의도한 것인지 의도하지 않은 것인지 "이대로가면 나꼼수만 상처입을텐데, 이는 여성주의도 존립근거를 잃는 것일 뿐이다."라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특히 서울대 사회대에서 여성주의자의 부침과 학생운동진영의 부침을 유비하는 부분은 이러한 의심은 더욱 강화된다. 만약 그 의심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윤리냐 정치냐'의 논의가 무력해지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나꼼수의 '살아 있음'은 정치적 성과도 아니요 윤리적 파토스의 증대도 아니기 때문이다.(사회대 학생운동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보는데 쉽게 대답이 안나온다. 무정파라 통칭되는 '선배님'들이 살아있는 것이라면 나꼼수가 살아있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테니까)
이 글을 읽을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이에 대해서 딱히 논증할 필요가 없다 여기기에 pre-script로서 서술하였다.
2.
나꼼수에 대한 판단을 치워놓고, 철저하게 나꼼수와 여성주의의 대결만을 놓고 볼 때(나꼼수vs여성주의가 '나꼼퀴'의 프레임이라는 주장도 있던데, 비키니 시위 이후 나꼼수를 공격하는 트위터 상의 논거들과 쏟아져 나온 여성단체들의 입장서를 한번이라도 읽어봤다면 그런 무식한 소리는 할 수 없으리라. 오히려 중재 역할을 자임하던 나꼼수 지지자들이 이 프레임을 해체하려 노력하였다.) 그리고 이를 추상화시켜 '진보진영'과 '진보진영 내의 여성주의자'의 대결을 놓고 볼 때, 윤리성의 코드를 통한 정치라는 분석에 매우 동의한다. 본 글은 이 분석에 몇가지 변수들을 더하고자 함이다.
3.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민주당으로 통칭되는 '주류 정치세력'의 정치 코드는 실제로 공리주의, 적어도 '경제적 조건의 상승'을 통해 전개된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속칭 진보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집단은 경제-코드를 탈코드화하고 윤리-코드로 재코드화함으로써 정치권력에 접근한다. 기존의 경제-코드는 자본주의라는 하부구조로부터 생겨난 것이기도 하지만, 식민지 해방 이후 친일 경력 인사들이 정치권력을 획득한 것과도 관계가 있다. 이들은 윤리-코드를 단 한치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적극적으로 경제-코드를 한국 정치사의 유일한 접근법으로 박제하였다.
각설하고,원글은 맑스주의 운동권들의 '과학적' 맑스주의란 경제-코드임에도 내면의 윤리-코드와 맞물릴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랬기에 역시 윤리-코드로 자신의 입장(공격)를 전개하는 여성주의자들은 바로 이 진보 혹은 맑스주의자들의 윤리-코드와 대결 할 수밖에 없다고 논증하고 있다.
4.
그러나 구조적/역사적 조건으로 경제-코드 중심으로 짜여진 한국사회 정치 풍토에서도, 그러나, 결국 구체적 정치 현상이 전개될 때는 윤리-코드가 가장 전면에 나서게 된다. 아니 정확히는 권력의지 앞에서는 어떠한 코드도 절대성을 갖지 않으며 자유자재로 활용될 뿐이다.
한/민 두 보수정당의 대결은 경제-코드 내부에서의 서로간의 미비한 차이로 인해 결국 윤리-코드에서의 경쟁으로 이어진다. 상호 간에 비리에 대해 미친 듯이 물어뜯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민주당 진영이 한나라당 진영을 독재정권의 후예라고 까듯, 한나라당 진영은 민주당 진영을 친북세력이라고 깐다. 여기서 친북세력이라는 비판이 "자본주의와 시장의 자율성을 과도한 평등주의적 주장으로 억압하는 것"을 지칭하는게 아님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한국사회의 친북세력 공격의 코드는 윤리-코드이다. 한국전쟁을 일으켜 수백만명의 가족을 죽인, 그리고 지들만 배터지게 먹으며 인민들을 굶겨죽인 잔악무도한 김씨 일가!
서로간의 윤리-코드 공격으로 정권을 주거니받거니하며 그네들의 거의 동일한 경제-코드는 일관되게 집행된다. 민주당을 벗어난 범진보진영(사실 본글을 따라 내 논지를 전개하느라 이렇게 글을 쓰고는 있는데 민주당과 범진보진영의 구분을 잘 모르겠다. 이에 박원순, 나꼼수 등 '시민사회 진영'을 다룬다고 생각하며 글을 작성하였다.)을 비롯 맑스주의(혹은 노동자운동) 진영에서도 대중들을 만나는 과정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고 철저히 윤리-코드에 맞춰져있다. "해고는 살인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 "김진숙을 살려내라!" 인간주의적인 선동의 언어들은 맑스주의의 그 맑스 저작부터 얼룩덜룩 점철되어 있다. 이 자가 지금 스스로 '과학적 맑스주의'를 주장하고 있는것 맞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당연히 그 후계자들의 '과학적' 이론은 철저하게 '윤리적'이고 '감정적'인 선동문으로 전환되어 발표되어왔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맑스주의자들의 경제-코드는 한/민 정당의 경제-코드와 완전히 정반대임에도 이들은 경제-코드가 아닌 윤리-코드로 대중을 만난다는 것이다.
5.
정리하자면, 한국사회에서 한/민/범진보/맑스주의라는 크게 네 가지의 정치집단은 모두 윤리-코드로 서로를 공박하고 상대하고 있다. 경제-코드는 맑스주의 앞의 사선을 기준으로 크게 분화되지만(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식도 되지만) 논쟁 과정에서 전진배치 되지 않는다. "노동과 자본의 계급투쟁 속에서 기술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되고 이윤율이 하락해 결국은 고정자본의 붕괴가 이루어질 것인데 그 과정에서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자에게 출혈적인 착취를 강제하며 그/녀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몰아넣을 것이고 노동자 계급이 조직화되어 이에 맞선 투쟁을 전개해 새로운 생산양식을 구축하지 않으면 파시즘이 도래하여 (블라블라)이기 때문에 우리를 지지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김진숙이 저 높은 85호 크레인에서 목숨을 걸고 올라가 있습니다. 경찰은 핸드폰도 끊고 약도 안 올려보내주고. 이것이 말이 됩니까! 야만적인 MB 정부를 규탄하는 희망의 버스에 함께 탑시다."가 먼저 나온다. 앞의 얘기는 조금 친해지면 조직화 할 때 건네진다고나 할까.
한/민/범진보가 서로의 '부정적'인 면을 까는 방식으로 윤리-코드를 점화한다면 맑스주의 진영은 '인간주의'라는 윤리-코드로 승부수를 띄운다. 본글의 분석에 이를 첨가한다면 맑스주의 진영에 유의미한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인간주의는 인간에 대한 루머보다 인간에게 흥미를 끌지 못하기에.
다시 돌아와서. 이상의 논의를 따른다면 본글의 논리를 약간 변용할 필요가 있다. 보수진영은 경제-코드로 범진보진영은 윤리-코드로 그리고 맑스주의 집단은 경제-코드를 가졌지만 힘이 없으며 현실 속에선 윤리-코드와 맞닿아 있다. 라는 것이 본글의 논지다. 나는 이를 "모든 집단은 (나름의 경제-코드를 가지고 있건 아니건) 현실 정치 속에서는 윤리-코드로 경쟁한다. 왜냐하면 그게 잘 팔리니까"라고 변용하고 싶다.
6.
위의 변용된 문장에 담긴 '모든 집단'에는 여성주의자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물론 여기서 여성주의가 경제-코드를 가지고 있다면 조금 이상하겠다. 위에서 서술된 각 집단들은 나름 총체성의 형태로 세상을 설명하고 권력의지를 드러냈던 자들이라면 여성주의는 특정한 부문으로서 정치이다. 그렇다면 총체적인 형태 속에서 경제-코드라는 것은 개별 부문에선 권력관계라고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제안한다. 경제-코드가 핵심이 된 이유는 한국사회의 토대가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돈이 권력이라는 말. 경제-코드란 권력-코드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성주의를 포함 시킨 논의에선 경제-코드를 권력-코드로 치환하도록 한다.
자 다시 돌아가서, 즉 여성주의자들 또한 나름의 권력-코드를 가지고 있지만(아닌 여성주의 분파도 있고) 실제 정치 영역에서는 윤리-코드로 승부를 보려한다. 그리고 이들이 던지는 승부수는 죄다 꽝이었으며 결국 아무런 성과를 남기지 못해왔음은 본글에서 매우 적나라하고 나름 슬프게 설명되어 있다.
7.
그러나 5에서 변용된 문장으로 여성주의자의 권력-코드와 윤리-코드의 관계를 톺아보자. 본글은 "여성주의자들은 윤리-코드로 공격을 하는데 실질적으론 권력-코드에 묶인 꼴이다. 왜냐 그런 코드를 받아주는건 범진보/맑스주의자들 뿐이니까"라 얘기하는데, 이 또한 살짝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의 정치적 행보로서의 윤리-코드는 그네들이 추구하는 권력-코드가 놓인 조건 상 범진보/맑스주의를 향할 수밖에 없다"
여성주의가 균열을 만들어내기 위한 개입이 가능한 지점은 '적대' '모순' '갈등'이라는 개념을 애초에 이해하고 있는 집단은 맑스주의자들 뿐이다.(사실 범진보는 그렇지 않다. 그랬기에 서울대 사회대 학생사회에서 맑스주의vs여성주의 논쟁과 나꼼수vs여성주의 논쟁의 양상이 극명하게 다른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이 더욱 적은 지적 노력과 간단한 감정노동만으로 개입의 효과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어쨌든 미약할 정도로 거의 정치세력화되지 않은 집단이기에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그리고 발목잡기론이나 분열론에도 동의하진 않는다.) 쉽게 말해서 권력-코드도 비슷하고 그래서 도출되는 윤리-코드의 선동 방식도 유사하다. "피해자를 살려내자" "가해자를 처벌하라"
단지 문제는 이런 여성주의자들의 공격이 시작된 90년대엔 이것이 그나마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유의미한 발걸음이었을 수 있으나, 그게 2012년에 되어서도 똑같은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나는 "2012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맑스주의자들 공격이나 하고 앉아있냐"라고 내 문장이 해석되는 것을 경계한다. 경계하는 것은 오로지 지적 역량이 거의 배가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90년대 이후 맑스주의자들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이에 대해선 논쟁적이지만) 지금도 '에티켓'만 존재할 뿐 사실상 여성주의자의 의제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성주의자들은 "따라서 우린 똑같이 공격한다!"를 선택했는데 나는 이 단순함이 당황스러운 것이다. 본글이 말하는대로 상황이 바뀌지 않았다면 그건 그 당시의 공격이 효과가 없는 형태였다는거고 이에 대한 치열한 지적 성찰이 필요했다.
8.
그래서 결론적으로, 요구하고픈 바는 윤리-코드가 아닌 권력-코드의 전면화이다. 무차별적인 성폭력에 스스로를 피해자화하며 피해자들을 규합해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진보진영 내부의 여성주의의 현재를 개탄하는 '언니'들의 시니컬한 외침은 어떠한 실제 권력을 획득할 수 없다. 권력-코드를 위해 윤리-코드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인데 그게 권력으로부터 자신들을 배제시키는 역설이다. 요구하고픈 바는 따라서 '상처 받은' '피해자'인 '착한 언니'가 되어 '언니-여동생'들 모아모아 '가해자'에게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힘을 가지고 가해자를 집단에서 배제시키고 여성주의 드라이브를 강공할 수 있는 권력이다. 한나라당-민주당 양대 정당은 윤리-코드와 경제-코드를 마음대로 들었다놨다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다. 좌파 진영 내부에서(울타리 밖으로만 나가면 쨉도 안되지만) 마초적 좌파들은 본글 처럼 과학적 맑스주의라는 경제-코드와 '노동자의 아픔', '기름밥 동지'라는 윤리-코드를 적절히 조합하며 여성주의자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렇다면 권력-코드의 전면화가 아닌 윤리-코드와 권력-코드의 적절한 조합을 시도해야 할 터인데 왜 권력-코드의 전면화를 요구하는가. 이는 내가 바라는 바이니까^^;; 권력-코드의 전면화는 소위 좌파들에게도 요구하고픈 바이다. 순간의 대중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피해자화, 영웅 만들기, 감정적이고 심지어 비과학적인 선동. 일련의 윤리-코드는 순간의 지지를 가져다 줄 지 몰라도 결국 관철시키고자하는 경제-코드를 침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80년 광주 이후 확대되는 듯 하던 노동자 세력화가 90년대 초 전노협 시절을 절정으로 찍은 뒤 20년 넘게 그 끝도 모른 채 하락하고 있다. 여성주의자들이 90년대 중후반 진보진영 내부에서 벌여냈던 진보진영 내 여성주의 확대 운동이 성과가 없었듯 단적으로 맑스주의 운동도 개판이다. 결국 발본적으로 전화되어야 하는 집단은 양쪽 다 마찬가지이다.
9.
글을 마무리지으며 얘기를 완전 구체 영역으로 끌고 내려와볼까?
김어준은 비키니 사건이 이 정도 사단이 나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생물학적 완전성" 드립을 날려댄다. 분명하게도 나꼼수는 심지어 경제-코드마저 없는 윤리-코드로서 반MB 전선을 그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윤리-코드는 철저한 중용으로 귀결된다. 아무것도 안하는 박근혜나 안철수가 유력한 대권주자인건 이유가 있다.(물론 아무것도 안하는걸로 쭉 지속되면 그건 무엇을 한다-안한다의 중용에서 벗어나게되서 지지율이 하락하게 된다.) 나꼼수 식의 '호오'가 분명한 유쾌한 정치는 그 과정의 이벤트적 성격을 가지고 이용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용된 집단은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제 역할을 다 수행하고 서브컬쳐이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바라본다면 박수 칠 때 떠나야 계속 정치적으로 클 수 있을테다. 이걸로 감옥에 들어갔다 사면되어 금의환향하며 총선이든 대선이든 노려보려던 정봉주의 앞길도 좀 꺾였고, 김어준도 그냥 딴지일보의 구독율(?)을 높이는 것 정도로 만족해야하게 되었다. 별로 더러운 일 없이 조용히 서브컬쳐로 사라질 수도 있었는데 더러운 꼴 당한 것은 자기들의 천박함(매우 윤리-코드적인 수식어지만 여성주의 '언니'들이 개발한 용어 중 이게 너무 마음에 들어서 종종 사용한다. 솔직히 '남성중심적이고 반여성적인 세계관'이라는 표현은 식상하잖아..) 때문인걸 누굴 탓하겠나. 삼국 까페의 공동 성명서로 그네들의 정치인생 탄탄대로는 일단 이렇게 정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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