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글렀어. 삽이나 들고 강이나 파라고!
← 구스님의 글에 트랙백!!
충대 신문에 한양대 김용민 겸임교수가 특별 기고문을 보냈다.
제목은 "너희에게 희망이 없다" 이다.
http://press.cnu.ac.kr/news/?news/view/id=5512
간단히 정리하자면,
등록금,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서 이명박이 해결할 의사표명도 하지 않는 이유는 다 20대 니네가 찌질해서 그런거다. 20대 너네가 이런저런 바쁜 생활에 운동권에 대한 까칠함까지 완비하시고 그저 잘 살아보려는데만 혈안이 되어있으니 이명박이 20대를 '밥'으로 안다는 거다.
이쯤까지 들으면 '나약한 지성이여 일어서라!'라고 외치는 한 운동권 출신 교수의 안타까운 선동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본론이 나온다.
역시 정리해보자.
그래도 너네 20대 데모하거나 그럴 필욘 없을꺼 같다. 아니 그냥 하지 마라. 너네 찌질한거 이미 세상이 다 알고있어서 괜히 이제와서 깝치다간 더더욱 쳐발리기 밖에 더하겠냐? 그러니까 너넨 그냥 니 살던대로 '밥'으로 살아. 난 기대안하니까. 난 10대를 믿어 찌질한 지금 20대가 물러가고 지금의 10대가 대학에 들어오는 시기에 세상은 바뀔꺼야. 난믿어!!
1.
재밌다. 이걸로 한 분의 블로그는 난리가 난듯한데.... 20대, 아니 20대가 아닌 대학생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요즘 대학생들 예전같지 않다고 말하는거 뭐 한두번 들은게 아니다. 작년 촛불집회 때도 중고등학생들의 초기 모습에 환호하며 대학생들이 보이지 않는다며 온갖 비난들이 매체에서 쏟아져 나왔었다.
20대 통탄론, 20대 무용론, 20대 개xx론 등등 20대들의 순종정신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들 중에는, 원색적인 비방을하는 사람도, 슬픈 통탄을 하는 사람도, 눈물어린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위 글의 필자는 세 가지가 짬뽕되어있다고 봐야겠지. 대부분 20대 비판론자들의 글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은 그저 도식적으로 80년대의 대학과 지금의 대학을 단순비교하면서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2.
나는 이 글에도 거의 동의하지 않지만 굳이 포스팅하는 이유는, 위의 글이 적어도 그런 단순비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학생을 이야기하면서 IMF와 그 이후 시작된 남한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빼놓고 단순비교를 한다는건 그냥 무식한 말인 거다. 위의 글에도 나와있듯 IMF이후 남한사회는 극도로 경쟁 중심의 사회로 재편된다.
그 속에서 지금 대학생들의 부모님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하고 있고, 대학생들 또한 앞길이 깜깜하다.(청년실업이 지금처럼 이슈화되기 이전에도 충분히 대학생들의 취업문은 바늘구멍이었다.) 다들 살아남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고, 그 경쟁을 하는 것이 미덕인 양 간주되는 사회 속에서 성장해왔다.
80년대 대학생들이 거리를 메운 사진을 들이밀며 너넨 왜 이러지 못하냐! 라고 비난하면서, 동시에 그 당시 거리를 쌩까고 도서관으로 향해 삼시를 모두 수석 합격한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교수들의 시국선언 기사를 들이밀며, 대학생들이 교수보다 안움직이냐고 뭐라 그러지만 동시에 어떻게 대학생활을 보내야 교수가 되는지에 대해서 너무나 뻔함에도 아무도 거기에는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 대학생더러는 어서 거리로 나오라고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오니까 "그러길래 젊었을 때 공부나 하지"라고 말한다,
솔직히 대학생들은 "나더러 뭐 어쩌라고 !!" 소리치고 싶어 미칠 지경일 것이다. 아니 공부 열심히하면 너도 삼시 합격 할 수 있을꺼야, 그치만 안하면 너도 저런 비정규직이 되어야되. 라고 그렇게 세뇌를 시켜놓고, 알겠다고 그럼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도서관 들어가니까 또 들어간다고 난리니.. 진짜루.. 대학생들은 열받지...
3.
거기다가 10대에 대한 희망은 대체 어디서 오는거? 과연 지금 10대는 지금 대학생들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지금 10대 아이들의 성장 조건은 지금 대학생들의 성장조건보다 더 열악해졌다. 경쟁은 더더욱 격화되었고, IMF보다 더 거대한 금융위기가 아이들의 가정을 옥죄고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토론을 하는 아이들이라고?
촛불집회는 '시민적 동일성'이라는 매우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관념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일부 좌파들이 촛불을 '중산층 운동'이라고 한마디로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데에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다른 배제와 차별을 양산해냈던 촛불집회, 10대 아이들이 그 속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었을까? 촛불을 경험한 10대 아이들이 만들 수 있는 세상의 한계는 끽해야 노빠 세상 일 뿐.
이런 조건 속에서 10대 아이들 또한 그 선배들인 우리 대학생들의 뒷 수순을 밟을 뿐이다. 아니 지금 대학생보다 더더욱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려 할것이다. 단지 대학생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투표장에 좀더 열심히 가는 정도랄까? 실제로 이번주 한겨레 21을 보니 이명박의 당선과 한나라당의 압승이 대의제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거리의 정치인 촛불을 만들어냈다면, 촛불의 처절한 실패는 다시 대의제로의 강렬한 회복을 만들어냈다고 하더군. 노무현에 대한 강렬한 열망, 그리고 민주당의 지지율 1등 복귀는 바로 그러한 변화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의제가 그리고 민주당과 노무현이 희망이 되지 않음은 너무나 명백하다.
4.
막상 써놓고 보니 대학생으로서의 변명과, 10대도 안될꺼에요~ 라는 비관적 글을 적어놓았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래서 안될꺼에요~ 가 아니라. 그러한 조건의 과학적이고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항의 담론과 움직임은 억압받는 조건 속에서 대중들의 분노와 답답한 지점을 적확하게 짚어내고, 손을 내밀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20대가 찌질해진 것도, 10대 또한 별볼일 없을 이유도, 그것이 결정론적으로 안된다는 입장이 아니라. 바로 현재적 조건인 것이다. 그 조건 속에서 사람들을 저항주체화 시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운동이다.
이 글처럼 20대의 자존심을 북북 긁어서 거리로 내모는 것은 제대로 된 운동이 아닌 것이다.(내 생각엔 필자가 진짜로 20대 니넨 그러다 죽어라~ 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이 든다. 자존심을 건드는 일종의 비꼼의 미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끽해야 노빠 수준의 시민적 동일성에 갖힌 촛불을 아직까지 찬양하면서, 그저 '반이명박'이라는 쉬운 구호로 사람들을 적당히 묶어내려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5.
물론 자신들의 어쩔 수 없음을 강변하는 대학생들을 바라보는 것도 씁쓸하긴 하다. 분명 그/녀들이 스펙에 목매야만 하는 것이 그/녀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것이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고 강변할 수 있는 자신감은과 당당함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활동가로서 위의 글을 봤을 땐 코웃음이 나왔지만, 대학생으로써 위의 글을 바라보면 매우 답답했다. 도저히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말할 수 없었다. 20대든 10대든 386이든 그 이상이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닥치고 거리를 사수하는게 아니라, 지금의 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언어와 이론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명박이 독재한다! 이명박하고 싸우자! 가 아니라
이명박이 독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밝혀내고 그것에 맞서 싸우자! 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는 사회체제의 모순이다.
작년의 촛불은, 지금의 촛불은 신자유주의에 맞서기엔 너무나 미약하고, 한계적이었다. 그랬기에 대학생들이 자신있게 거리로 나오지 못한 것이고, 그랬기에 촛불은 결국 꺼졌던 것이고, 그랬기에 이번 범국민대회도 일회적 이벤트로 끝나게 된 것이다. 그 한계들을 넘어서는, 분할들을 넘어서는, 시민적 동일성의 틀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민중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끊임없는 학습과 토론 그리고 진짜 민주주의가 지금 우리에게 대학생에게 요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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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 신문에 한양대 김용민 겸임교수가 특별 기고문을 보냈다.
제목은 "너희에게 희망이 없다" 이다.
http://press.cnu.ac.kr/news/?news/view/id=5512
간단히 정리하자면,
등록금,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서 이명박이 해결할 의사표명도 하지 않는 이유는 다 20대 니네가 찌질해서 그런거다. 20대 너네가 이런저런 바쁜 생활에 운동권에 대한 까칠함까지 완비하시고 그저 잘 살아보려는데만 혈안이 되어있으니 이명박이 20대를 '밥'으로 안다는 거다.
이쯤까지 들으면 '나약한 지성이여 일어서라!'라고 외치는 한 운동권 출신 교수의 안타까운 선동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본론이 나온다.
역시 정리해보자.
그래도 너네 20대 데모하거나 그럴 필욘 없을꺼 같다. 아니 그냥 하지 마라. 너네 찌질한거 이미 세상이 다 알고있어서 괜히 이제와서 깝치다간 더더욱 쳐발리기 밖에 더하겠냐? 그러니까 너넨 그냥 니 살던대로 '밥'으로 살아. 난 기대안하니까. 난 10대를 믿어 찌질한 지금 20대가 물러가고 지금의 10대가 대학에 들어오는 시기에 세상은 바뀔꺼야. 난믿어!!
1.
재밌다. 이걸로 한 분의 블로그는 난리가 난듯한데.... 20대, 아니 20대가 아닌 대학생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요즘 대학생들 예전같지 않다고 말하는거 뭐 한두번 들은게 아니다. 작년 촛불집회 때도 중고등학생들의 초기 모습에 환호하며 대학생들이 보이지 않는다며 온갖 비난들이 매체에서 쏟아져 나왔었다.
20대 통탄론, 20대 무용론, 20대 개xx론 등등 20대들의 순종정신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들 중에는, 원색적인 비방을하는 사람도, 슬픈 통탄을 하는 사람도, 눈물어린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위 글의 필자는 세 가지가 짬뽕되어있다고 봐야겠지. 대부분 20대 비판론자들의 글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은 그저 도식적으로 80년대의 대학과 지금의 대학을 단순비교하면서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2.
나는 이 글에도 거의 동의하지 않지만 굳이 포스팅하는 이유는, 위의 글이 적어도 그런 단순비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학생을 이야기하면서 IMF와 그 이후 시작된 남한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빼놓고 단순비교를 한다는건 그냥 무식한 말인 거다. 위의 글에도 나와있듯 IMF이후 남한사회는 극도로 경쟁 중심의 사회로 재편된다.
그 속에서 지금 대학생들의 부모님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하고 있고, 대학생들 또한 앞길이 깜깜하다.(청년실업이 지금처럼 이슈화되기 이전에도 충분히 대학생들의 취업문은 바늘구멍이었다.) 다들 살아남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고, 그 경쟁을 하는 것이 미덕인 양 간주되는 사회 속에서 성장해왔다.
80년대 대학생들이 거리를 메운 사진을 들이밀며 너넨 왜 이러지 못하냐! 라고 비난하면서, 동시에 그 당시 거리를 쌩까고 도서관으로 향해 삼시를 모두 수석 합격한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교수들의 시국선언 기사를 들이밀며, 대학생들이 교수보다 안움직이냐고 뭐라 그러지만 동시에 어떻게 대학생활을 보내야 교수가 되는지에 대해서 너무나 뻔함에도 아무도 거기에는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 대학생더러는 어서 거리로 나오라고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오니까 "그러길래 젊었을 때 공부나 하지"라고 말한다,
솔직히 대학생들은 "나더러 뭐 어쩌라고 !!" 소리치고 싶어 미칠 지경일 것이다. 아니 공부 열심히하면 너도 삼시 합격 할 수 있을꺼야, 그치만 안하면 너도 저런 비정규직이 되어야되. 라고 그렇게 세뇌를 시켜놓고, 알겠다고 그럼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도서관 들어가니까 또 들어간다고 난리니.. 진짜루.. 대학생들은 열받지...
3.
거기다가 10대에 대한 희망은 대체 어디서 오는거? 과연 지금 10대는 지금 대학생들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지금 10대 아이들의 성장 조건은 지금 대학생들의 성장조건보다 더 열악해졌다. 경쟁은 더더욱 격화되었고, IMF보다 더 거대한 금융위기가 아이들의 가정을 옥죄고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토론을 하는 아이들이라고?
촛불집회는 '시민적 동일성'이라는 매우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관념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일부 좌파들이 촛불을 '중산층 운동'이라고 한마디로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데에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다른 배제와 차별을 양산해냈던 촛불집회, 10대 아이들이 그 속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었을까? 촛불을 경험한 10대 아이들이 만들 수 있는 세상의 한계는 끽해야 노빠 세상 일 뿐.
이런 조건 속에서 10대 아이들 또한 그 선배들인 우리 대학생들의 뒷 수순을 밟을 뿐이다. 아니 지금 대학생보다 더더욱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려 할것이다. 단지 대학생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투표장에 좀더 열심히 가는 정도랄까? 실제로 이번주 한겨레 21을 보니 이명박의 당선과 한나라당의 압승이 대의제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거리의 정치인 촛불을 만들어냈다면, 촛불의 처절한 실패는 다시 대의제로의 강렬한 회복을 만들어냈다고 하더군. 노무현에 대한 강렬한 열망, 그리고 민주당의 지지율 1등 복귀는 바로 그러한 변화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의제가 그리고 민주당과 노무현이 희망이 되지 않음은 너무나 명백하다.
4.
막상 써놓고 보니 대학생으로서의 변명과, 10대도 안될꺼에요~ 라는 비관적 글을 적어놓았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래서 안될꺼에요~ 가 아니라. 그러한 조건의 과학적이고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항의 담론과 움직임은 억압받는 조건 속에서 대중들의 분노와 답답한 지점을 적확하게 짚어내고, 손을 내밀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20대가 찌질해진 것도, 10대 또한 별볼일 없을 이유도, 그것이 결정론적으로 안된다는 입장이 아니라. 바로 현재적 조건인 것이다. 그 조건 속에서 사람들을 저항주체화 시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운동이다.
이 글처럼 20대의 자존심을 북북 긁어서 거리로 내모는 것은 제대로 된 운동이 아닌 것이다.(내 생각엔 필자가 진짜로 20대 니넨 그러다 죽어라~ 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이 든다. 자존심을 건드는 일종의 비꼼의 미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끽해야 노빠 수준의 시민적 동일성에 갖힌 촛불을 아직까지 찬양하면서, 그저 '반이명박'이라는 쉬운 구호로 사람들을 적당히 묶어내려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5.
물론 자신들의 어쩔 수 없음을 강변하는 대학생들을 바라보는 것도 씁쓸하긴 하다. 분명 그/녀들이 스펙에 목매야만 하는 것이 그/녀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것이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고 강변할 수 있는 자신감은과 당당함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활동가로서 위의 글을 봤을 땐 코웃음이 나왔지만, 대학생으로써 위의 글을 바라보면 매우 답답했다. 도저히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말할 수 없었다. 20대든 10대든 386이든 그 이상이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닥치고 거리를 사수하는게 아니라, 지금의 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언어와 이론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명박이 독재한다! 이명박하고 싸우자! 가 아니라
이명박이 독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밝혀내고 그것에 맞서 싸우자! 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는 사회체제의 모순이다.
작년의 촛불은, 지금의 촛불은 신자유주의에 맞서기엔 너무나 미약하고, 한계적이었다. 그랬기에 대학생들이 자신있게 거리로 나오지 못한 것이고, 그랬기에 촛불은 결국 꺼졌던 것이고, 그랬기에 이번 범국민대회도 일회적 이벤트로 끝나게 된 것이다. 그 한계들을 넘어서는, 분할들을 넘어서는, 시민적 동일성의 틀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민중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끊임없는 학습과 토론 그리고 진짜 민주주의가 지금 우리에게 대학생에게 요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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